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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GALLERY GRIMSON
갤러리그림손

지영섭 개인전

2025. 11. 05 - 2025. 11. 11

Statement

시간에 대한 성찰, 인간과 자연에 관한 지극한 사유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 미술평론)

 

 

자연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이자 예술의 원천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적응함으로써 생존하고, 예술은 자연을 사유하고 형상화함으로써 그 관계를 확인한다. 이러한 인간과 자연에 관한 입장과 태도에 따라 문명은 전혀 다른 양태로 발전하게 된다. 그중 동양적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로 설명되며, 그 핵심은 무위(無爲)에 있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뜻하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인위적 개입을 배제하면서도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즉 자연에 대한 동양적 사유는 시간의 본질을 직선적 흐름보다는 원환적 순환 속에서 이해한다. 사계절의 운행과 변화 속에서 시간의 순환적 질서를 읽어냈으며, 무위(無爲)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시간과 존재의 합일을 사유했다. 이러한 동양적 관점에서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리듬이자 세계의 생명 질서이다. 이는 자연을 인간의 목적에 종속시키지 않고, 그 자체의 흐름과 균형을 존중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작가 지영섭의 작업은 이러한 동양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함이 여실하다. 그는 자연과 시간의 관계에 주목하며, 자연이 기록하는 시간의 언어를 작품 속에 옮겨낸다. 인간이 행위를 통해 문명을 구축하면 자연은 시간을 통해 이를 수렴한다. 즉 인간은 시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며, 예술적 형식을 창출한다. 시간은 자연의 언어인 셈이다. 작가는 이렇게 응축된 내밀한 시간의 언어들을 포착하고 음미하여 해독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하는 계기로 삼는다.

그가 주목하는 대상은 장엄한 풍경이나 거대한 자연이 아니다. 발밑에 놓인 작은 사물들, 곧 낙엽이나 나뭇가지, 흙 부스러기와 같은 미미하고 소소한 일상의 사물들이다. 이들은 작고 일상적이며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도 어김없이 자연의 순환과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일상적인 높이에서 발아래 자연을 응시하며, 그 속에 내재된 시간과 질서를 확인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예술이 자연을 형상화하는 방법은 때로 과장이나 왜곡을 통해 장엄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광대한 공간을 묘사하여 그 위대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이러한 과장과 왜곡을 배제하고 일상적이고 담담한 시선으로 작은 사물과 마주한다. 그것은 매우 겸손하고 친근한 시선이다. 즉 작가는 작은 것을 통해 큰 의미를 읽어내는 전통적인 이소관대(以小觀大)의 태도를 실천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는 자연을 생명의 땅으로 인식하고 표현한다. 모든 것들이 비롯되는 근원이자 마땅히 돌아가야 할 궁극적인 귀결처인 것이다. 이는 다분히 형이상학적 이해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연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흐르는 시간의 언어를 포착하고 해독함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성찰의 과정이자, 동양적 자연관을 조형적으로 표출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생명의 땅은 크고 장대한 풍경 대신 작은 사물들을 통해 표현된다. 그가 표현하는 다양한 낙엽들과 나뭇가지들, 그리고 흙 부스러기에 축적된 세월의 무게는 곧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은 리듬을 보여준다. 그것은 화려한 수사나 극적 연출을 통해서가 아니라, 담담한 관찰과 사유를 통해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즉 작은 것 속에서 드러나는 큰 의미, 일상 속에서 확인되는 자연의 질서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결국 작가의 작업은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품고 있는 시간과 질서를 드러내는 예술적 실천이다. 이는 단정하고도 일관된 태도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게 하며, 관람자에게 일상의 사소한 것들 속에 내재한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그의 작업은 자연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키고,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도록 이끈다.

작가의 작업은 한지를 바탕으로 한 수용성 안료를 근간으로 분채와 목탄은 물론 토분 등 다양한 재료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스미고 번지며 이루어지는 자연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러한 재료들이 어우러지고 변화하며 이루어내는 효과는 단순히 안료, 혹은 재료로서의 물리적인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지향하는 작업의 실질이자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한지에 수묵을 더하고, 이에 다시 강한 아교를 더함으로써 그 물성을 강화하는 작업 과정은 반복을 통한 집적의 연속이다. 그것은 반복적인 노동을 쌓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기다림을 통해 시간을 더해가며 그 내밀한 변화를 수렴해 내는 일이다. 이를 통해 작가의 필연적인 조형 의지는 자연의 우연적인 것들과 융합되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작위와 무작위, 우연과 필연,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병열과 융합인 셈이다.

비록 안정적인 색채의 운용이 두드러지고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이지만, 작가의 작업을 관류하는 것은 일종의 수묵화와도 같은 것이다. 즉 작가에 속한 것과 자연의 것을 구분하고, 재료의 자율성과 그 변화를 용인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수묵의 태도이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작가는 수많은 우연과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이를 여하히 수용하고 선택할 것인가는 온전히 작가의 안목과 감각에 의해 이루어진다.

드러남과 숨김, 보이고 감춰진 것들로 이루어진 반복적이고 중첩된 구조는 매우 깊고 견고한 물성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무엇인가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형상의 유혹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본질을 직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라 해석된다. 작가가 응시하고 관조하는 본질은 바로 시간에 대한 성찰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며 그 유장함을 이어가는 시간의 연속성과 자연의 무한한 포용성 안에서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 앞에 선 우리는 작품 속에 응축된 시간을 마주하며, 동시에 자신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시간은 유한한 삶의 조건을 일깨우는 동시에, 예술을 통해 영원에 대한 동경을 가능케 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곧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에 대한 근원적 이해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전제로 한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로 귀착된다

Biography

지 영 섭 池 英 燮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한국화과 졸업

 

개인전

2025 그림손 갤러리 (서울)

1998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그룹전

2025 25회 동강 현대작가 초대전 (영월 문화 예술 회관)

2025 한국화 점점점 (지오 아트 스페이스)

2019 21세기 동문 전람회 (인영 갤러리)

2013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더케이 갤러리)

2007 중앙 한국화 대전 (세종 문화 회관 미술관)

2004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공평 아트 센터)

2001 변혁기의 한국화 (공평 아트 센터)

2000 그림으로 보는 우리 세시풍속 (갤러리 사비나)

1996 예우 40년전 (서울 시립 미술관)

1995 중앙 예술제 (종로 갤러리)

1995 95 신춘초대 오늘의 시각 전개와 수렴 (공평 아트 센터)

1994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동산방)

1994 아세아의 새로운 도약전 (동경, 주일 한국대사관 한국 문화원)

1994 한국 2000년대의 주역들 (운현궁 미술회관)

1993 ’93 서울 - 현대 한국화전 (서울 시립 미술관)

1993 ’93 열린 미술 - 대중 참여 모색 (코스모스 갤러리)

1993 -중 대표 작가전 (예술의 전당)

1993 한국 미술 2000년대의 도전전 (상문당 갤러리)

1992 ’92 서울 SPECT 미술제 (관훈 미술관)

1992 ’92 한국성 - 그 현장전 (경인 미술관)

1991 후인 갤러리 개관 기념 초대전 (후인 갤러리)

1991 ‘91 현대미술 - 한국성을 향한 제언전 (인데코 화랑)

1991 한국화 오늘과 내일 ’91 (워커힐 미술관)

1990 ’90 한국화 상황 모색전 (문예 진흥원 미술회관)

1990 한국성 - 오늘의 시각전 (경인 미술관)

1990 자연의 꿈 기획 초대전 (예일 화랑)

1990 중앙대 동문전 (서울 갤러리)

1989 B35’ 89 초대전 (문예 진흥원 미술회관)

1989 43인전 (조선 일보 미술관)

1988 중앙 현대 미술제 (경인 미술관)

1988 채묵 80년대의 새 물결 (채묵의 집점 시리즈 V) (동덕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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